엔딩 이후의 DLC: 토론토에서 당근(Karrot)을 다시 소개하며
· Kyoungwon Lee
어제 아이와 함께 할로윈 파티에 초대받았어요. 처음 보는 사람들과 서서 스몰 토크를 나누게 됐는데, 늘 그렇듯 “So, what do you do?”가 오갔어요.
“I work at Karrot.”
짧은 정적이 흘렀어요. 상대는 들어본 것 같다고 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얼굴이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요.
“It’s a secondhand marketplace platform. Like Facebook Marketplace.”
그제야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이름만으로 충분하던 곳
한국이었다면 필요 없는 설명이었을 거예요. “당근 다녀요” 한마디면 대화는 다음으로 넘어갔거든요. 동네에서 물건을 사고팔고, 따뜻한 온도를 주고받는 그 앱.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어요. 회사 이름 안에 제가 해온 일이 다 들어 있었어요.
경력이 쌓이면서 자기소개가 점점 짧아졌던 것 같아요. 무슨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한다고 말하면 상대가 나머지를 채워줬거든요. 저는 그 짧은 자기소개에 익숙해져 있었나 봐요.
원본 게임을 다 깨고 켠 DLC
토론토에서의 그 순간은 게임으로 치면 DLC를 처음 켠 기분이었어요. 원본 게임은 나름대로 엔딩을 봤어요. 그리고 레벨도 장비도 그대로 넘어왔어요. 그런데 맵이 낯설어요. 마을 사람들은 저를 몰라요. 제가 원본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여기서 아무 의미가 없어요. 다시 첫 마을에서 퀘스트를 받아야 해요.
13년 전에도 그랬어요
사실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에요. 13년 전 카카오에 신입으로 들어갔을 때도 비슷했어요. 그때도 주변 지인에게 회사를 설명해야 했어요. 지금은 누구나 아는 이름이지만, 그 이름을 그렇게 만든 건 제가 아니었어요. 회사를 잘 이끌어준 훌륭한 선배들이 있었고, 저는 그 뒤를 따라 걸으며 많은 것을 배웠어요. 회사가 알려질수록 제 자기소개도 함께 짧아졌어요.
이번엔 달라요
이번 DLC는 그때와 두 가지가 달라요.
하나는 울타리가 없다는 거예요. 한국에서는 같은 언어, 같은 문화, 같은 맥락이 기본으로 깔려 있었어요. 여기서는 그 맥락부터 새로 만들어야 해요.
다른 하나는 제 자리예요. 13년 전에는 선배들이 길을 내줬어요. 이제는 제가 그 선배의 자리에 서 있어요. 누군가 길을 만들어주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제가 그때 선배들이 했던 일을 해내야 해요.
그래서 하고 싶은 것
한국에서 당근은 이미 이름만 들어도 아는 회사예요. 이웃을 연결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회사로 알려져 있어요. 캐나다에서도, 그리고 북미 전역에서도 Karrot이 그런 이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파티에서 “I work at Karrot”이라고 말하면 Facebook Marketplace를 꺼낼 필요 없이 고개가 끄덕여지는 날.
사실 이번 DLC는 막막하게 느껴져요. 그래도 엔딩을 이미 한 번 본 사람만 플레이할 수 있는 콘텐츠잖아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기보다는, 원본에서 다져온 경험으로 새로운 챕터를 여는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려 해요. 그리고 그동안 그래왔던 것처럼, 또다시 해답을 찾기 위해 몰입해 보려고 해요.